시장에는 하나의 원인만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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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가가 움직이면 우리는 이유를 찾는다. 실적, 금리, 수급, 뉴스, 심리. 하지만 오래 보다 보니 하나의 원인으로 시장을 설명하려 할수록 설명이 더 어려워졌다. 원인과 결과는 서로 얽혀 있다 돈이 들어와 주가가 오를 수 있다. 그런데 주가가 오르기 때문에 다시 돈이 들어오기도 한다. 좋은 실적이 기대를 만들고, 기대가 자본을 끌어오며, 그 자본이 기업의 투자를 가능하게 해 다음 실적을 만들 수도 있다. 원인은 결과가 되고 결과는 다시 원인이 된다. 시세삼각형도 혼자 서 있지 않는다 돈·펀더멘탈·센티멘탈이라는 세 꼭짓점도 각각 하나의 단순한 요소가 아니다. 돈 안에는 금리와 유동성, 수급과 자산배분이 있다. 펀더멘탈 안에는 제품·고객·경쟁·투자·실적이 있다. 센티멘탈 안에는 기대와 공포, 기억과 군중심리가 있다. 세 요소는 다시 수많은 조건의 묶음이다. 연기론을 주가 공식으로 쓰지 않는다 불교의 연기론에서 내가 빌리고 싶은 것은 모든 것이 조건과 관계 속에서 생겨나고 변한다는 시선이다. 시세는 여러 조건이 잠시 만나 만들어낸 결과다. 그렇다고 연기론으로 다음 주가를 맞힐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하나의 이유를 붙잡고 전체라고 믿는 내 습관을 경계하게 한다. 지금 여기를 잠시 멈춰 본다 나는 연기론을 시장의 ‘정태적 파악’이라는 표현으로 생각해 본다. 시장이 정지해 있다는 뜻이 아니다. 끊임없이 움직이는 시장을 잠시 멈춘 사진처럼 놓고, 지금 여기에서 어떤 조건들이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살펴보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시간이 흐르면 관계도 달라진다. 그래서 좋은 기업이라는 판단도 영원하지 않고, 나쁜 환경이라는 판단도 영원하지 않다. 연기론이 내게 주는 것은 확신보다 겸손에 가깝다. 내가 놓치고 있는 조건은 없는가. 자주 묻는 질문 연기론으로 주가를 예측할 수 있나요? 아니다. 이 글에서는 시장을 단일 원인이 아니라 조건과 관계의 연결로 보기 위한 철학적 렌즈로 사용한다. 정태적 파악은 시장이 정적이라는 뜻인가요...

좋은 종목을 찾고도 기다려야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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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은 종목을 찾았다고 지금 사야 하는 것은 아니다. 좋은 기업을 찾으면 사고 싶어진다. 오래 찾던 종목이라면 마음은 더 급해진다. 그런데 좋은 기업을 찾는 일과 지금 사는 일은 다르다. 제때는 정확한 바닥이 아니다 제때를 말하면 가장 싼 가격을 맞히는 것으로 오해하기 쉽다. 내가 생각하는 제때는 기다리던 변화가 현실에서 나타나기 시작하는 때다. 제품이 고객을 만나고, 투자가 성과의 흔적으로 나타나고, 자본의 흐름이 바뀌고, 시장의 기대가 새롭게 형성되는 구간이다. 정확한 한 점보다 변화가 확인되는 시간대에 가깝다. 맥점은 차트의 한 점만이 아니다 나는 맥점을 기업의 변화, 자본의 흐름, 사람의 마음, 가격이 어느 정도 맞물리면서 행동해야 할 이유가 충분해지는 자리로 생각한다. 차트도 그 흔적 가운데 하나일 수 있다. 그러나 차트 한 점만으로 맥점을 정의하고 싶지는 않다. 기업이 좋아도 돈이 아직 움직이지 않을 수 있다. 돈이 움직여도 기대가 너무 앞섰을 수 있다. 모든 것이 좋아 보여도 가격이 이미 미래를 지나치게 반영했을 수 있다. 그래서 기다린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도 투자다 예전에는 매매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같았다. 하지만 조건이 부족한데도 행동하는 것보다 기다리는 편이 나을 때가 있다. 나는 이것을 ‘0의 행위’라고 적어본 적이 있다. 매매하지 않는 것도 하나의 행동이다. 다만 기다림과 고집은 다르다. 이유가 부족해서 기다리는 것과, 틀린 판단을 인정하기 싫어서 붙잡고 있는 것은 같은 기다림이 아니다. 시장의 맥점과 나의 맥점 생각해 보면 맥점은 둘일 수도 있다. 시장에서는 기업과 자본과 기대가 만나는 자리가 있고, 내 안에서는 욕심과 공포를 지나 실제 행동을 결정하는 자리가 있다. 시장 조건이 충분해도 내가 공포 때문에 움직이지 못할 수 있다. 조건이 부족해도 FOMO 때문에 먼저 움직일 수 있다. 결국 맥점 앞에도 내가 서 있다. 기업이 움직인 것인가. 돈이 움...

돈은 어디로 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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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을 하며 결국 자꾸 돌아오게 되는 것이 돈의 흐름이다. 돈은 가만히 있지 않는다. 자산과 시장 사이를 움직이고, 산업 사이를 움직이고, 같은 산업 안에서도 기업을 골라 움직인다. 그렇다고 ‘돈이 몰리는 곳을 따라 사면 된다’는 뜻은 아니다.

방향을 맞혀도 투자에서는 틀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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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의 미래를 맞혔다. 기업도 좋은 것 같다. 그런데 투자 결과는 좋지 않다. 이상해 보이지만 시장에서는 흔한 일이다. 방향을 맞히는 것과 투자 결과를 맞히는 것은 같은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시세는 시간과 공간의 교차에서 만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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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는 방향만이 아니라 언제 어디에서 현실이 되는가의 문제다. 좋은 기업을 알아도 ‘제때’를 놓치는 이유 같은 기업인데 어느 때는 시장이 열광하고 어느 때는 외면한다. 같은 기술을 가진 기업도 어떤 산업의 연결 속에 놓였느냐에 따라 시장의 관심이 달라진다. 돈·펀더멘탈·센티멘탈이라는 시세삼각형만으로도 부족한 이유다. 세 요소는 진공 속에 있지 않다. 언제나 시간과 공간 속에서 움직인다. 시세를 이해하려면 무엇이 움직이는지만이 아니라 그 변화가 언제, 어디에서 현실이 되는지도 보아야 한다. 시간은 단순한 보유기간이 아니다 기업의 기술이 제품이 되고, 투자가 생산능력이 되고, 매출이 이익으로 이어지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이런 시간은 앞으로 나아간다. 연구가 개발이 되고, 개발이 생산이 되며, 생산이 고객의 선택으로 이어지는 과정에는 건너뛸 수 없는 순서가 있다. 그러나 시장에는 반복되는 시간도 있다. 경기와 금리, 투자자의 관심, 탐욕과 공포는 같은 모습은 아니어도 비슷한 리듬을 되풀이한다. 새로운 기술과 기업이 등장해도 기대가 커지고 실망이 뒤따르며 다시 현실을 확인하는 과정은 반복된다. 나는 시간을 직선과 순환이 함께 있는 것으로 본다. 앞으로 나아가면서 비슷한 모습을 되풀이한다. 과거와 똑같지는 않지만 과거를 살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공간은 지도가 아니다 투자에서 공간은 단순한 국가나 지역만을 뜻하지 않는다. 기업과 산업, 공급망, 경쟁과 보완 관계, 정책과 규제, 시장과 자본의 네트워크가 실제 변화가 벌어지는 공간이다. 새로운 기술이 등장해도 그것을 제품으로 만들 기업, 부품과 원재료를 공급할 산업, 구매할 고객, 허용할 제도가 만나지 않으면 현실이 되기 어렵다. 좋은 아이디어가 좋은 사업이 되려면 여러 연결이 제때 맞아야 한다. 한 기업만 바라보면 이 연결을 놓치기 쉽다. 기업의 기술이 좋아도 필요한 부품이 부족할 수 있고, 생산능력이 있어도 고객의 채택이 늦을 수 있다. 규제가 길을 열어주기도 하고 막기도 한다. 경쟁자가 빠르게 따라오면 처음...

시세는 무엇으로 만들어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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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세는 하나의 원인이 아니라 돈·기업·사람의 마음이 만나는 곳에서 만들어진다. 돈·펀더멘탈·센티멘탈, 그리고 움직이는 시세삼각형 주식을 오래 했지만 시세를 설명하는 일은 여전히 어렵다. 주가가 오르면 이유가 수없이 붙는다. 실적이 좋아서, 금리가 내려서, 외국인이 사서, 새로운 기술이 나와서, 사람들이 열광해서. 떨어질 때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런 설명을 하나씩 따라가다 보면 오히려 시장이 더 복잡해진다. 나는 그래서 복잡한 시장을 조금 단순하게 보고 싶었다. 오랫동안 시장을 들여다보다 내 나름대로 세 가지로 묶었다. 돈, 펀더멘탈, 센티멘탈. 나는 이것을 시세삼각형이라고 부른다. 돈이 움직이지 않으면 시세도 움직이기 어렵다 아무리 좋은 기업이라도 사려는 돈이 들어오지 않으면 주가는 쉽게 움직이지 않는다. 금리와 유동성, 외국인과 기관의 수급, 시장으로 들어오고 나가는 자금, 산업과 종목 사이를 옮겨 다니는 자본이 모두 이 돈의 흐름에 들어간다. 그렇다고 돈이 많아졌다고 모든 주식이 함께 오르는 것도 아니다. 돈에도 방향이 있다. 어떤 때에는 반도체로 몰리고, 어떤 때에는 바이오나 2차전지로 간다. 같은 산업 안에서도 결국 몇몇 기업으로 집중된다. 그래서 나는 시장 전체의 유동성만 보지 않는다. 지금 돈이 어디에서 나와 어디로 가고 있는가. 이 질문이 중요하다. 펀더멘탈은 결국 기업으로 돌아오게 한다 돈만으로 시세가 오래 갈 수 있을까. 잠시는 가능하다. 그러나 시간이 길어지면 결국 기업이 무엇을 만들고 얼마나 팔며 얼마를 남기는지가 드러난다. 매출, 이익, 현금흐름, 경쟁력, 기술, 시장점유율, 앞으로의 성장 가능성. 내가 말하는 펀더멘탈은 이런 기업의 실제 모습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현재의 숫자만은 아니다. 주식은 미래를 먼저 보려 하기 때문이다. 현재 이익이 작더라도 앞으로 커질 가능성이 있다면 시장은 먼저 반응한다. 반대로 지금 실적이 좋아도 앞으로 나빠질 것으로 생각하면 주가는 먼저 내려갈 수 있다. ...

나는 시장을 있는 그대로 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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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지식은 빌려도 판단까지 빌릴 수는 없다. 감정에 흔들리는 나와 자등명·법등명 주식을 하며 ‘내 판단을 믿어야 한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그런데 나는 이 말도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흔들리고 욕심내고 두려워하는 지금의 나를 무조건 믿는다면 그것은 주체성이 아니라 또 다른 고집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먼저 이 시장을 배워야 한다 남의 말을 듣지 말라는 뜻이 아니다. 기업도 공부해야 하고 시장도 공부해야 한다. 나보다 많이 아는 사람의 지식도 빌려야 한다. 하지만 남의 지식을 빌리는 것과 남의 판단으로 내 돈을 투자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남의 지식을 빌릴 수는 있어도 남의 판단으로 내 돈을 투자할 수 없다. 자등명과 법등명을 투자에서 생각해 본다 나는 불교의 자등명·법등명이라는 말을 투자자의 자세를 돌아보는 데 빌려본다. 자기 자신을 등불로 삼되, 자기 확신에 갇히지 않고 사실과 원칙이라는 등불도 함께 보자는 뜻으로 받아들인다. 내가 틀릴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마지막 판단을 남에게 떠넘기지 않는 것.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투자 주체성에 가깝다. 여실지견은 목표가 아니라 방향이다 감정에 휘둘리면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기 어렵다. 내가 원하는 것, 두려워하는 것, 이미 가진 것에 따라 같은 사실도 다르게 보인다. 여실지견. 있는 그대로 보고, 있는 그대로 알려는 것. 나는 이것을 주식의 출발점 가운데 하나로 생각한다. 그렇다고 내가 시장을 완벽하게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그쪽으로 가려 한다. 제대로 보려는 나 주식은 마음공부만으로 되는 일이 아니다. 기업이 있고 돈이 있고 가격이 있다. 그래서 더 공부해야 한다. 다만 그 모든 자료를 해석하는 마지막 자리에 내가 있다. 나는 지금 사실을 보고 있는가. 남의 확신을 빌려 내 불안을 덮고 있는가.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있지는 않은가. 자등명이 자기 확신이 되어서는 안 된다. 법등명이 남의 규칙을 맹목적으로 따르는 일이 되어서...